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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Read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 독자

내가 설마 마지막독자는 아니겠지만, 유행(?)이 한참 지나간 후에 독후감을 쓰려니 다소 겸연쩍긴하다.

타이타닉이란 영화도 하도 사람들이 많이 이야길 해서 안보러갔듯이 이 소설도 하도 이야기들을 많이 해서 안봤었는데, 역시 청개구리 심보는 그다지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는가보다. 너무 재미있게 봤다. 시간이 남아서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집어들고 보게 되었는데, 도저히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42페이지에서 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서점에서 낄낄대고 웃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재치있는 문장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나랑 동갑에 같은 인천출신이라 더 빠져들었던것 같다. 가끔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의 나이가 나와 같다거나 하면 괜히 동질감을 느끼면서 내가 주인공인듯한 착각에 빠진채 소설을 읽게된다. 하루키의 소설 몇 가지를 읽을 때도 나와 주인공의 나이가 같아서 괜히 주인공 성격도 좀 나와 비슷한 것 처럼 느껴졌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야구를 좋아했다거나 명문대를 나왔다거나  머리가 무척 크다거나 하는 점은 다르다. 나는 프로야구가 생기던 당시 야구라는 존재를 매우 싫어했다. 별 시덥잖은걸 주말 내내 모든 채널에서 해대는 바람에 당췌 티비에서 볼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어린 시절은 야구나 축구와 같은 공놀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냥 도둑잡기라든가 서로치기.. 뭐 그런놀이만 하고 놀았었던것 같다. 
 
야구에 관심이 없었으니, 지루하게 티비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는 야구가 야속하기만 했고 삼미의 기록적인 패전따위에 그다지 가슴아파 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소속의 중요함을 깨닫지도 못했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아서  명문대 따위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실패는 겪어봤다. 사업을 하다 실패해보기도 했고, 이혼남 보다 더 안쳐주는 노총각이되었다. 명문대 출신이 실직자가 된 것에 비교해서 추락율이 더 큰지 작은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볼 만큼은 되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주인공은 프로의 세계에서 벗어나 느리고 여유있는 자족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점에서 나는 몇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대박의 욕심은 버리게 된 것 같다. 물론 돈이 많이 벌리는걸 싫어하게 된건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벌겠다는걸 목표로 삼지는 않게 되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그 일을 잘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돈은 저절로 벌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저절로 벌리는게 많이 벌리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먹고 살정도만 되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고 있으니 그걸로 되는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요즘 다시 바빠질지도 모르는 일을 시작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다소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다. 사업이란게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고 해도 막상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보다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업무가 더 많이 따라오기 때문에 결국 삶은 바빠지고 일은 재미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내가 어쩔수 없는 생물학적 번식 본능도 채우려면, 주인공 처럼 돌아올 마누라도 없는 나에겐 좀 더 '프로'스러운 모습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자기좋아하는 일이나 하는 수입적은 노총각을 좋아할 여자는 없으니 말이다. 주인공과 좀 더 비슷하려면 사업을 할때쯤에 결혼을 했다가 망하면서 이혼을 했었어야 했다. 결국 나는 주인공보다 좀 더 안좋은 상황인 셈이다.

어릴때 소속의 중요함도 깨닫지 못했고, 생물의 본능을 어쩔수도 없는 나는 결국 좀 더 치열한 삶을 당분간 더 살아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책 읽기를 막 끝마쳤을때는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주인공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꼈던것 같은데, 이 글을 쓰다보니 나는 아직 그렇게만 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기회가 된다면 삼미슈퍼스타즈의 야구를 재현해보고 싶다. 나라면 충분히 가능할것 같다. 함께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