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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보문산에 올라

작년 초 발바닥에 정체모를 응어리가 생긴 후로 수술이다 뭐다 해서 못가기 시작한 산행이 이제 못간지 일년이 넘어 버렸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서 슬슬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움찔움질 들더니 지난 주엔 나서려했으나 비가 온다고 해서 못갔고 어제는 드디어 나섰다.


몇년 전까지 등산 클럽에서 주말마다 산에 다녔었고, 주말에 바빴던(?) 일년간에도 틈틈히 산엘 갔었는데, 그 작은 미확인 응어리가 내 산행생활을 일년 가까이 중단 시켜왔다.


이제 다시 가려고 한다. 내가 가지 못했던 그 동안에도 산은 묵묵히 그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여도 산은 또 다시 묵묵히 미소만 짓고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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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산행지로 보문산을 택했다. 누나네 집에 가면 베란다에서 저 멀리 앞에 보이는 산이다. 볼때마다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두어번 다녀온 대전천 남쪽 끄트머리와도 가까워 왠지 가줘야할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산이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등산로가 곳곳에 있어서 어느쪽으로든 대충 접근하면 올라가는 길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번 자전거로 서남부쪽을 돌아 가수원 지나 산성동으로 해서 한밭도서관까지 가면서 등산로 입구인 듯 한 곳을 봐 두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기로 했다.


서대전 네거리 전철역에서 내려 한밭 도서관으로 향했다. 서대전 사거리였던가? 6개월 넘게 살았지만 아직 대전은 지명도 낯설다. 그간 거의 돌아다니질 않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마침 등산복차림의 아저씨가 보이길래 슬쩍 뒤따라 갔더니 잘 안보이던 등산로로 쏙 들어간다.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땡볕아래 아스팔트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갈뻔 했다.

처음 가는 사람을 위해서 지도상에 등산로 입구를 표시해봤다. 먼저 지도에 나온 2번 등산로 부근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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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경사가 좀 있다. 작년 초 등산을 안간 후로 만성적인 피로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산을 벅차게 오를때 심장의 강력한 펌프질이 내 피를 온몸 구석 구석으로 강하게 펌프질 해서 그간의 운동부족으로 정체되어 막혀있던 혈관들을 뻥 뚫어주길 기대하며 더욱 더 빨리 산비탈로 내닫는다.


뒷골이 뻐근하고 싸할정도로 벅차게 오르다 보면 묘한 쾌감이 온다. 그런 기분을 즐기기 위해 등산을 한다던 여자도 있었다.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들이 느낀다는 러닝 하이와 비슷한게 아닐까 싶다.


나는 사실 등산보다 싸이클링에서 그런걸 먼저느꼈고 지금도 그쪽에서 더 많이 느낀다. 산비탈을 자전거를 타고 이를 악물며 오를때나 있는 힘껏 페달을 밟으며 고속으로 달릴때 바로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만끽할 수있다고나 할까? 그 느낌을 대학 시절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면서 처음 느꼈다.


등산은 싸이클링으로 비탈길 오를때에 비하면 그런 살아있다는 느낌은 적지만, 싸이클링과 다른 그만의 맛이 있다. 공기도 도로 보다 훨씬 좋지만, 무엇인가 하나씩 정복해 간다는 인간의 출처 모를 욕망을 충족시켜주기도 하고, 한여름 행길에서 싸이클 타다가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여자들도 가끔 있다 ^^


결국 그쪽으로 이야기가 흘러버렸군. 하지만 이번 산행엔 그런 기대는 무참히 짖밟혀버렸다. 대전 처자들은 산엔 안가나보다. 여자라곤 나이지긋하신 아주머니들과 부모님따라 온 어린아이들뿐이었다. 정확히 3명의 젊은 여자들이 있었다. 세는데 한 손으로 충분한 숫자라고나..


예전 자전거 전국일주때는 한라산에서 '작업'에 성공한 흔치 않은(사실 유일한) 사례가 있었기에 산은 내게 각별한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마저 한 번 뿐 사실 산에서는 대전만 그런게 아니라 어디나 젊은 여자들은 드물고 아저씨 아줌마가 천지이고 나도 이제 그 아저씨의 일종일 뿐이다.


산에서까지 누가 내 속에 프로그램해 넣었는지 모를 그 빌어먹을 번식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건 좀 슬픈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사실 평지(?)에서도 귀찮아 진지 오랜데, 산에서 뭔 작업? 그냥 잠시 머리속을 스치는 조물주의 의도의 흔적이라고나 할까. 라고하기엔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군... --;


정상에 오르니 누나네 집에서 저 멀리 산꼭대기에 쪼그맣게 보이던 정자가 있었다. 그늘에 앉아 한참을 쉬다가, 가져간 과일을 꺼내 먹고 싶었으나 정자의 구조상 모두가 마주보는 자세인데 어째 아무도 뭘 먹는 사람이 없네? 달랑 하나씩 가져간 참외와 오렌지를 혼자만 꺼내서 우적우적 먹기도 그래서 일단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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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앞에 보니 대전둘레산길잇기 종합안내도 라는게 있었다. 서울에 불수사도북이 있다면 대전엔 대전둘레산길이 있었다. 족히 이삼일은 걸릴 듯한 종주로다. 나중에 찾아보니 120Km랜다. 평지라면 24시간 행군거리를 좀 넘지만 산길이니 좀 더 걸릴테고, 산에서 한 이 삼박 정도 하면서 종주 할만한 거리다 싶다.


난 이런것만 보면 어디선지 모를 도전욕구가 샘솟는다. 대전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일주해봐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특히 대청호를 끼고 도는 코스가 땡긴다. 그리고 산에 올라서보니 대전도 참 크다. 이름 값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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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떠나서 무슨 산성이라는게 있다고 해서 거기도 들렀다. 정자가 또 하나 있다. 그 정자 한 구석에 잠시 서서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그 많은 자리중에 내 바로 옆에 굳이 와서 똬리를 틀고 앉는다. 작업을 거는건 전혀 아닌것 같고 그냥 그 자리에 앉고 싶었던 것 같다. 아줌마가 되면 왜 쑥스러움이란게 없어질까? 처녀시절에는 절대 안그랬을 사람도 아줌마만 되면 싹 바뀐다. 사람은 30cm이내로 타인이 접근하면 불안감을 갖게 된다고 하던데, 그런것도 없는지 그 많은 자릴 두고 꼭 거길 앉아서 날 쫒아내야 속이 시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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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옆에 박힌 지도에서 하산길을 보고 내려가는데, 왠 갈래길이 그리 많은지 그 길들이 다 등산로라면 등산지도가 정자앞에 박힌 놈보다 열배는 복잡해야 했을것 같다. 그러나 그 많은 갈래길에서도 내가 선택한 길은 내게 실망을 주지 않고 나를 산아래로 인도해주었다.


산길을 벗어나니 과거에 유원지였던듯한 풍경이 나타났다. 유원지에는 으례히 있는 유령의 집에서는 정말 유령이 나올것 같았고, 하수처리장 같은 분위기의 수영장도 있었다. 심지어 케이블 없는 케이블카까지 있었다. 앙꼬 없는 찐빵 보다 더 심한거 아닌가 싶다. 고무줄 없는 빤쓰도 입을 순 있다. 그러나 케이블 없는 케이블카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진찍기 좋은 광경들이 지천에 널렸건만 내 휴대폰 카메라는 음악을 꺼야만 찍을 수 있었기에 사진 찍기가 귀찮았다. 듣던 음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능만 있어도 찍겠는데, 그런 기능조차 없다.  듣던 부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 나의 사소한 바램도 무시해주는 쓸데없는 카메라 터닝기능에 집착한 절름발이 오백만화소 폰이 그 멋진 광경없는 이 글을 쓰게 만드는다.  <- 산문적 허용


다행히 하산하여 도시로 돌아온 바로 그곳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가 있었다. 130번 타고 한 큐에 집으로 오는길에 평소 못보던 대전의 길거리 풍경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안가본 길을 가보는 것 또한 등산에 못지 않은 내 취미이며,  안가본길 가보기는 또 다른 내 취미인 자전거 타기와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취미이다.


차를 타고 안가본길을 가보는 것과 자전거를 타고 가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차를 타고 가는것에도 버스처럼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것과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가는 것도 엄청나게 다르다. 운전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그 길을 익히느냐 그냥 겉만 훑고 오느냐의 차이라면, 자전거 타고 가보는 것과 차를 타고 가보는 것은, 어떤 여자를 얼핏 보고 지나치는 것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는 것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여름에 등산을 하고 나면 냉면이 무지 땡긴다. 오는 길에 냉면과 동치미육수를 사가지고 왔다. 그냥 육수는 안된다. 동치미 육수여야했다. 거기에 열무김치를 잔뜩 넣어서 먹는 맛이란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