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is

전주 영화제 '불면의 밤' 관람 및 전주 시내 도보 방황기

인터넷을 방황하던 중 전주영화제 배너를 보고 급 필 받아서 예매까지 하게 되었다.

예전 인천에 살때는 부천뽠타스틱영화제에도 가곤 했는데, 언제 부턴가 영화제 같은데에는 신경도 못쓰고 살아왔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관두고 다시 공부니 사업이니 하게 되면서 부터 그런 여유(?)를 잃어 버린듯하다. 

나에게 회사란데는 별 고민없이 삶을 살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일 자체가 쉬워서 라기 보다는, 뭘 해먹고 살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안하고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전으로 오면서, 전주가 한시간 정도의 거리로 가까워졌다. 내게는 전주와 경주 이 두도시는 왠지 정감이 느껴진다. 서울도 북촌 한옥마을 같은 곳도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아마 한옥에 대한 선호가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것 같다. 

영화제에 갈때 제일 고민스러운 것은 어떤 영화를 보느냐이다. 평상시 개봉하는 영화의 대 여섯배는 족히 넘는  영화 중에서 볼 것을 몇 개 고르는게 쉬울리가 없다. 지하철에도 자리가 하나 나면 고민없이 앉으면 되지만, 텅빈지하철에 타게되면 어디에 앉아야 좋을지가 매우 고민스러워진다. 지나친 자유는 부담스러움도 동반한다는 사실. 

아무튼 '불면의 밤'이라는 이름의 밤샘 3종세트로 정했다. 사실 돈내고 들어갔으니까 잠안자고 보는거지 잠이 안와서 밤새 영화를 보는건 아니니 자고싶어도 잠못드는 일반적인 불면의 밤은 아니지만, 아무튼 잠 안자고 영화보니 불면은 불면인 셈이다.

심야영화 답게 영화도 제법 에로틱할듯 해서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공식적인 휴가내지 여행을 스스로에게 준다는 의미가 컸다. 사업을 하게 되면서 일과 휴식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주말에도 그 상태 그대로 가게 되다보니, 정작 일만 열심히 한 것도 아니면서도 쉬었다는 느낌이 안들게 된다.

브라질 영화 두 편과 프랑스 영화 한 편이었는데, 이번영화를 계기로  브라질 사람들과는 교감이 좀 힘들겠다는 걸 절감했다.  첫번째 영화는 의도는 은근한 애로틱을 표방하고 만든것 같은데, 우리가 느끼기엔 그다지 에로틱하지도 않고 그냥 한 3.5차원정도 의 거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4차원이라고하기엔 일상적이고 일반적이라고 하기엔 왠지 어긋나 있는 정서?

이런 어긋남이 두 번째 영화인 '악의 화신'이라는 싸이코 살인마에 대한 영화로 가면서 극명해진다. 내 뒷 자리의 어느 여자분이 영화가 끝나자 '어이없이 잔인하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참 적절하지 않나 싶다. 의도는 분명히 웃기려고 한 것 같지 않은데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속출하고, 그러다가 의외로 심하게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세번째는 '모험'이라는 프랑스 영화인데, 셋 중 나았으나 앞의 두 편에 너무 지쳐서 자버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놓친것 같다. 물론 난 다 봤다. 막판에 창의력에 약간 자제력을 잃은듯 하긴 했으나 그런대로 여주인공도 예뻐주는 등 선전해서, 일요일 새벽을 분노로 시작하는 사태는 겨우 막아주었다.

놀라운건 쉬는 시간마다 간식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만원에 영화 세편 그리고 삼각김밤, 오렌지 쥬스, 바나나 2개(배고파서 하나 더 받아 먹었음^^)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느낌으로 새벽공기를 가르며 모든 업소가  닫혀있어서 썰렁한 전주 시내를 걸어서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일단 배고파서 시래기 해장국을 하나 시켜먹었다. 음식의 도시 전주에 가면 적어도 한 끼는 먹어주고 와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밤새 심란한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떨치지 못하여 두뇌를 너무 혹사 시켰는지 배가 너무 고팠다.

밥을 먹고 그냥 집에 오려니 왠지 아쉬웠다. 그래도 전주까지 왔는데, 딸랑 버스 터미널에서 15분 걸어가서 영화보고 다시 같은 길로 걸어와 버스타고 집에온다? 그건 너무 아쉽다는 생각과 집에가서 자고싶다는 갈등속에서 한 20분간 비몽사몽간에 갈등을때리는척 졸다가, 버스 시간을  하나 넘기면서 과감히 일어나 영화의 거리 쪽을 향했다.

터미널 바로 앞에 버스가 없어서 큰 길로 약간 걸어갔다. 버스 정거장이 안나와서 좀더 좀더 가다보니 들어선 길이 영 불안해진다. 길거리에 지도가 있는 표지만이 없어서 아쉬웠다. 버스 터미널에도 그런게 하나도 없었다. 쌩뚱맞게 서울 대전 부산 같은 전국 지하철 노선도만 있었다. 그런건 현지에 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

그러다 어떤 버스 정거장에 가니 지도가 있었다. 오래된 도시라 그런지 역시 길이 난해하다. 얼핏보면 5거리이나 유심히 보면 6거리인 교차로도 있는데, 각 길의 굵기가 다르면서 몇 몇은 일방통행이기까지 하다. 나중을 위해 일단 내 500만화소 폰카로 찍어서 저장해두고 다시 길을 떠났다.

분명 전주의 메인 도로로 보이는 길을 따라서 갔기 때문에, 정거장만 찾으면 바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벌써 한 1,2키로는 더 걸은듯 하나 전혀 메인스럽지 않다. 나중에 보니 두 갈래 길인줄 알았는데 세 갈래가 길이어서 엉뚱한 곳으로 가게된 것이었다.

제대로 방향을 잡아서 가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거의 와버렸다 --; 안가본 길을 가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큰 후회는 없지만 다리는 매우 아팠다.  

애초에 가려던 메인도로에 접어 드니 버스 노선도가 벽에 한가득 채워진 정거장이 나왔다. 한 정거장에 그렇게 많은 버스가 서는 것은 서울 종로에서도 못봤다. 손바닥만한 노선도가 정거장 벽면을 거의 가득 메우고 있다. 그 길은 경기전 앞을 지나는 오래된 도로인데, 전주의 버스는 거의 다 그 길을 통과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상한건 버스 노선도의 방향이었다. 지도는 기본적으로 북쪽이 위를 향하도록 그리는것인데 그 버스 노선도는 노선을 좌우로 배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도를 마음대로 돌려놨다. 나중에 전주시청웹사이트에도 들어가보니 같은 지도들이 버스 노선안내에 올려져 있다.

종종 지하철 역사에 있는 지도들이 출구의 방향과 지도의 방향을 맞춰주는 친절함을 발휘하느라고 방향을 돌려 놓는 경우는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본다. 그야말로 편집의 편의를 위해서 지도를 마음대로 돌려놨다. 지도도 작고 희끄무리해서 과연 그 지도로 노선을 파악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너무 했다 싶었다.

아래 지도는 전주시웹사이트에서 다운받은 지도이다.



그리고 아래지도가 북쪽이 위로 향하도록 표시된 다음맵이다. 두 지도에서 보라색으로 그어진 선이 전북대에서 전주역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위 지도에서 화살표가 아래 지도처럼 보이도록 지도를 반시계방향으로 약 90도 정도 돌려주어야 윗쪽이 북쪽이 된다. 


가뜩이나 보기 어려운 노선도를 방향까지 마음대로 올려 놓는것은 보는 사람입장에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만드는 사람은  노선도를 모두 좌우로 길게 그리면서 최대한 크게 그리려고 방향을 마음대로 수정하는 무리수를 둔것같다.

그러나 그중 다행인 것은 그 노선도들에는 모두 현재 정거장이 표시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 정거장에 오는 버스만 표시되어 있어서 오는 버스를 따로 골라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전의 버스 노선도는 방향은 제대로 되어 있으나 현위치 표시가 안되어 있고, 대전 시내 모든 노선이 구분 없이 표시되어 있어서 어떤 현재 정거장에 오는 노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서울엔 노선도가 그냥 정거장 이름들의 나열일 뿐이다. 대중교통 안내표지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되어 있는 곳이 드물다. 디자인계에서 많이 연구해야할 분야가 아닌가 싶다. 

최고의 디자인을 만들어내서 각 지자체가 공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표준으로까지 하는게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제대로 해 놓으면 알아서 따라 하지 않을까?

사실 영화제 전용 무료 셔틀 버스가 있으나 시간이 너무 일러서 아직 다니질 않아서 못탄 것이었다. 다시 버스터미널로 돌아올때 타려고 안내 책자에 있는 정거장 중 한 군데로 갔더니, 고속터미널행은 반대쪽에 있는 정거장에만 선다는 것이었다 --;  끝까지 버스가 말썽이다.

안내책자에도 방면별 정거장을 표시해 놓으면 좋겠다. 내년 안내책자는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다.

허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가다보니 객사라는 조선시대 건물이 나온다. 객사하면 길에서 죽는 객사가 먼저 떠오르지만, 저 객사는 예전에 관리가 오면 머물던 숙박기관 같은 것이라고 하는 거 같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조화를 중요시 여겨서 건물을 지을때도 나무나 바위를 베거나 치우지 않고, 같이 어울리도록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담이 언제쩍 만들어 진건지는 모르나 나무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나무는 마침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보기 드문 외부 계단과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사진은 안찍어 왔지만, 건물 기둥을 바치고 있는 주춧돌들도 보면 같은 모양으로 다음지 않고 넓적하니 생긴 자연 그대로  쓴 돌들이 많았다.


그냥 왠지 멋져보여서 한방.




여기에도 방치된 자전거가 있다. 이런거만 다 모아다 고물로 팔면 돈 꽤 될텐데.. 왠 전선들을 끊어다 팔고 그러는지 원.


이런 모습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처음볼때도 중국풍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 처마 올라간 각도가 중국식이다. 전주에도 차이나 타운이 있나?

간만에 다녀온 낯선 도시 체험, 나쁘지 않았다. 종종 근처에 있는 도시들을 들러봐야겠다.